답답함에 흘러나오는 짙은 한숨
얼굴을 부비듯 구기는 손
두려움을 부르는 지친 표정들
소환된 내 두려움은 결국 너를 찌른다.
왜 나는 아무 일도 없는데
상대방이 내가 완벽히 모르는 새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을까봐 불안해 하는 것일까?
순수한 두려움이다. 진심이다. 믿어달라. 어처구니 없겠지만 나는 그게 곧이라도 진짜가 되어서 현실로 펼쳐질까봐 금새 눈물이 다 고인다. 내 두려움은 바로 그 완벽한 평범함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아무일 없는 것, 또는 그런 것 같아 보임에서 말이다.
오래 함께 할 거라 약속하던 손가락이 기어이 부러지던 날.
이별을 통보받을 때 기대어 있던 딱딱한 방 벽. 기묘한 타이밍에 대해 알게 된 밥상머리.
충분한 시간이 다 지났고 이제는 도저히 되새길 추억조차 밋밋한 과거로 꺼진 줄 알았는데.
나를 괴롭히는 마지막 가시들이 남아있었다. 오늘의 너와의 관계에서는 이별장면을 겹쳐 볼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 듣게 되는 / 다른 이성.
어쩌면 내게 너무도 익숙한 구조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의구심이 만들어내는 나쁜 그림에 아무리 떨어본들, 현실이 더 무서우리라고는 정말로 펼쳐질때까지 알지 못했다.
물론 이 두려움은 이십대 초중반에 있었던 연애가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전화를 붙잡고 혼자 안방에 쓰러진 채 엉엉 울던 엄마. 밀레니엄의 새시대가 열리던 시절 전후부터 그는 (당시 열살이었다) 나에게 남자와 밤을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다. 이쯤오니 욕을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내 문제를 모두 남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래. 그래서. 나는 어떡하면 좋지. 정말로 아무일 없어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는 너로선 너무도 억울할 거야. 서운할 거야. 상처를 쏟아내는 게 창피하고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 네 답답하고 지친 표정과 목소리가 나에겐 너무도 익숙하다. 그래서 그게 너무 무섭다. 경직된다. 그 친숙한 모습 앞에 나는 외로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렇게 악순환이다.
물론 네가 해결하거나 도와줄 일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다. 아무일 없을거야 믿으면 될까? 너를 믿고 그 사람도 믿으면 되는 걸까?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믿을 줄은 알았지만, 없다고 믿는 법은 모르고 살았나보다. 아니면 아예 거꾸로, 인생사 무슨일이든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며 차라리 느슨해지면 될까. 지나간 시절이 이렇게나 골 깊은 상처로 남아있을 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이걸 해결해야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