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 7, 2018

취한 날


백년만에 취한 것 같아서 기념으로 글을 끼적여 본다
어차피 거의 아무도, 아니면 내가 믿을 만한 아주 조금의 사람들만 볼 페이지니까

오늘 아침에 별안간 너무 슬펐다
작년에 아파서 무지개 다리를 건넌 작은 개에 이어서
엄마 개도 아프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빠가 동물보고 "얘 이상한데" 라고 하는 것은 괜한 소리가 아니기 때문에.
아빠는 자신의 부모, 그리고 친구를 통해 죽음을 많이 경험한 사람이다
슬프지만 아빠 직감이 아주 좋다
너의 살아있음과 죽을 수 있음이
아주 멀리 있는 나를 하루 종일 괴롭힌다

너가 개이든지 사람이든지 상관없이
이토록 아픈 까닭은 아마
우리가 똑같이 살아있는 생명임을
그래봤자 몇년 거저로 숨쉬다 가는 삶임을
어쩌면 조금은 알기 때문이겠지
삶이 한 번 뿐인 줄 알지만
다음 생이 있다면 네가 내 친구로 태어났음 좋겠다.
꼭 그래 줘야해
아니면 이미 그러했던가

생일 때 선물받은 와인이 있었는데
집에 오프너가 없었고
칼이며 가위며 펜이며 숟가락 뒷꽁무니며 계속 후비적 대다가
라이터로 와인 병 목을 데우면 된다길래 한참을 기다리다가
결국 성질머리를 어쩌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하염없이 파내기 시작했다.
그러다 이내 코르크를 쑥 밀어 넣었다.

왜 아픈거야
왜 지금가는거야

아무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는 것
네가 그만큼 유일한 존재였기 때문이겠지

미안해
미안해

한국에 가는 비행기를 앞당겨야 한다
돈 아끼려고 엄청 한톨한톨 아끼다가도
가족 중에 누가 아프다고 하면
모든 계획과 모든 꿈이 다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미안해
미안해

보고싶다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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