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 28, 2018

무릎 탁1

현재 자신의 정체성과 멤버십에 기반을 두면서도(rooting) 그것을 본질화하지 않으며, 타자를 동질화하지 않고 상대방의 상황으로 이동(shifting)할 수 있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대화가 횡단의 정치이다. 31p


대부분의 예술은 "그가 나를 떠났구나."에서 시작된다. 상처를 준 사람은 상처에 대해 연구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은 그것의 구조와 원인, 역사를 규명하려 한다. 상대를 이해하려고 애쓰는 쪽은 언제나 '약자'이거나 더 사랑하는 사람이다. 때리는 사람은 "왜 그랬을까?"와 같은 의문을 가질 이유가 없고, 맞는 사람을 탐구할 필요가 없다. (...) 상처와 고통은 그 쾌락과 배움에 대해 지불하는 당연한 대가다. 사랑보다 더 진한 배움(intensive learning)을 주는 것이 삶에 또 있을까. 사랑받는 사람은 배우지 않기 때문에 수업료를 낼 필요가 없다. 사랑은 대상으로부터 유래-발생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 내부의 힘이다. 사랑하는 것은 자기 확신, 자기 희열이며, 사랑을 갖고자 하는 권력 의지다. (...)

사랑하는 것은 상처받기 쉬운 상태가 되는 것이다. 상처에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언어가 자란다. '쿨 앤 드라이', 건조하고 차가운 장소에서는 유기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편안한 상태에서 앎이란 가능하지 않다. 경계를 만났을 때, 가장 정확한 표지는 감정이다.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을 억압하는 상황이나 사람을 만났을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쉬운데, 이건 너무도 당연하다. 감정은 정치의식의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사유도 사랑도 없다는 것, 따라서 삶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근대의 발명품인 이성이 정적이고 따라서 위계적인 것이라면, 감정은 움직이는 것이고 세상과 대화하는 것이다. 감정의 부재, '쿨'함은 지배 규범과의 일치 속에서만 가능하다. 반응하는 것. 이것이 인간의 모든 느낌, 모든 즐거움, 모든 열정, 모든 생각의 근원이라고 생각한다. 
33-34p


인간의 삶은 구조에 대한 적응만이 아니라, 개인의 행위와 추구들로 이루어진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남성들과 여성들이, '피해자 논쟁'을 떠나 성 평등을 추구하고 있다.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과 관계의 환원론에 빠지기 쉽다. 단일 원인을 주장하고 '주적을 규탄, 타도'하기 보다는 문제가 전개되는 맥락에 대해 사유할 때, 문제가 구성되는 과정에 개입할 때, 자기 성장을 피하기 위해 타자를 찾는 일을 포기할 때, 다른 상상력을 가질때, 저항의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어떠한 권력도 투명하게, 전일적으로 관철되지 않으며, 어떠한 전제 권력 아래서도 인간의 경험은 그 권력의 주조 방식을 넘어선다. 35p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경험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지배 이데올로기나 대중매체에서 떠드는 것 이상을 알기 어렵다. 알려는 노력, 세상에 대한 애정과 고뇌를 유보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에게 상처를 준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이, 사유하지 않음, 이것이 바로 폭력이다. 45p 



차이가 차별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권력이 차이를 구성한다. 53p



남성은 젠더를 경험하지 않기 때문에 (성별 제도로 인해 차별받지 않기 때문에) 아버지라는 성역할과 노동자, 시민,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은 갈등하거나 충돌하지 않는다. 61p



모든 재현(re-presentation)은 현실을 구성하는 담론의 일부이며 실천이기 때문에, 현실의 권력 관계를 반영한다. 92p



남성권력의 징표 중 하나는 성이다. 남성에게 섹스는 그의 사회적 능력의 검증대이기 때문에 '다다익선'이지만, 여성에게 섹스는 적을 수록 좋은 것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은 권력과 자원을 가질수록 많은 여성과 섹스를 한다. 반면, 가난하고 권력이 없는 남성들은 한 여성을 다른 남성과 공유한다. 계급과 섹스의 관계는 성별에 따라 정반대로 나타난다. 여성은 사회적 지위가 높을 수록 한 명의 남성하고만 섹스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많은 남성을 상대해야 한다. 108p



가족과 사회가 배타적인 공간으로 설정되고 가족이 친밀성을 독점하기 시작한 것은, 근대 이후 공적인 영역과 사적인 영역이 분리되었다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하면서부터다.

(...)
한국은 강력한 가족주의 사회지만, 당위적으로 가족의 가치를 상요하고 신화화할 뿐이다. 가정폭력의 심각성은 말할 것도 없고, 가족은 친밀성과 자발적인 상호 보살핌의 공간이 아니라 지나치게 도구적이다. '기러기 아빠'는 이 문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례이다. 이는 남성이 희생하는 현상이라기보다는, 가족이 자녀 교육의 성공, 즉 출세 지상주의와 경쟁 논리로 가득 찬 공적 영역에 얼마나 종속적인지를 보여준다. 120p


'섹스'는 뇌로 하는 것이지 성기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발기는 혈액이 조직을 채우는 것인데, 이는 뇌의 역할이고 그 기능을 가능케 하는 '자극'의 내용은 철저히 사회적인 것이다. 125p






 - [페미니즘의 도전], 정희진 지음, 교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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