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28, 2018

Y에게

며칠 전 아침에 설거지통에 쌓아 올려진 커피잔들을 보고 너가 떠올랐다.
14년 겨울에, 가시지 않는 긴장 속을 사느라 계속해서 커피를 부어넣는 나를 보고
너는 커피를 하루에 한잔만 마신다면 상을 주겠다고 말했었어.
독일에 온 지금은, 그렇게 커피를 마시지 않아. 처음에는 이곳에서 작은 잔에 파는 커피에 속으로 작게 경악했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한국에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양의 커피를 단 하루에 마셨던가 조금 의아스러울 정도가 되었어.
그때는 그래서 속도 자주 아팠고 너는 내 건강을 걱정했었어.

그러고보니 학교 근처에 잠깐 살았을때도, 내가 고열로 아주 앓고 있던 어느 밤
너는 직접 내가 살던 집에 찾아왔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있었어서 아주 몽롱해져 있던 터라 잘은 기억나지 않지만
지하철 막차를 간신히 탈 수 있었을 그 시간에 죽을 싸들고 찾아와서 머리위에 수건을 놓아주었단 건 알아.
그나마 가까이 살고 있었다 손 쳐도
시간을 내서 친구를 찾아오는 건 바쁜 중에 간단치 않은 일이잖아.
그날도 너는 내 건강을 걱정했었네.

우리가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었던 그날은
혼자 자리에 남아서 생각해보아도 알 수 없었던 그대로
시간이 흘러서 더이상 시비를 가릴 수 없는 일이 되었는데
여전히 떠올리면 문제를 비집어 생각을 전개할 수 있기는 커녕 그저 아프다.
너는 그후 그나마 마음이 편안해졌을까? 일하기 나아졌을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때 네가 간신히 가졌던 것들을 내가 위협했다면 정말 미안해.
내가 의도치 않았더라도 네가 그렇게 느꼈던 것은 사실인거잖아.
그때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어.
그래도 너도 알아 주었음 하는 것은
나는 부채감 털어내려 연말에만 너를 생각한 게 아니었어

요즘 어떻게 지내?
전처럼 먹는둥 마는둥 끼니 대충 거르면서 다니는 건 아니지?
가족들은 어떻게 지내셔?
한국 그렇게 말도 안되게 춥다는데 여름에도 쉽게 추워하던 네 모습이 먼저 선하다.
부디 속 깊은 걱정들을 들어줄 좋은 새 친구들이 네 주변에 있길 바래.
제발 건강하게 지내고.
너에게 닿지도 않을 편지를 쓴다.

내가

Jan 24, 2018

03 공공미술 기사 읽기 _ 제프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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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튤립 꽃다발'(Bouquet of Tulips)이라는 이름의 이 조형물은 거대한 손이 여러 색의 튤립을 들고 있는 12m 높이의 작품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횃불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본뜬 것이다. 
제프 쿤스는 이 작품을 희생자들을 기리는 동시에 낙관주의의 상징으로서 파리 시민들이 테러라는 비극을 극복하는 것을 돕자는 의도로 디자인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작품은 현재 독일에서 제작 중으로, 파리 도심의 현대미술 전시장인 '팔레 드 도쿄'와 인접한 파리시립현대미술관 밖에 설치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서한에 서명한 이들은 해당 조형물을 "간접광고"라고 비난하면서 축구경기장 스타드 드 프랑스나 바타클랑 극장 등 파리 연쇄 테러 현장과는 관계도 없는 멀리 떨어진 곳에 설치된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들은 또 이번 조형물 제작 비용 300만 유로(약 39억3천만원)는 민간 후원자가 지원했지만, 스테인리스와 알루미늄으로 된 이 조형물을 지지하기 위해 지반을 강화하는 작업에는 세금이 투입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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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pch6****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까 제프 쿤스라는 사람이 저 조각상을 만들어서 제공하는 게 아니라 아이디어만 제공했고 프랑스 민간 단체에서 제작비용을 후원받아 독일에서 제작중임, 그런데 이 비용마저도 제작에 사용되는 게 아니라 설치장소의 지면 강화 작업 비용에 소모되고 있으며 예상비용보다 지출이 늘어나고 있음, 그리고 제프 쿤스는 자기 주변에다 이 프로젝트 사진을 찍어서 자랑하고 다니고 있는데 프랑스 사람들은 이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함(추모전시작품을 자랑스레 자신의 업적이라고 떠벌리고 다니는게 좋지 않게 보인다는 뜻인듯)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01&aid=0009830900&sid1=001
https://www.theartnewspaper.com/news/parisians-turn-their-noses-up-at-jeff-koons-bouquet-of-tulips

Jan 17, 2018

우울증과 불면증


요즘 아주 잠을 못자고 있다. 새벽 2~3시까지 깨어있는 것은 예사고,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과 SNS를 한없이 들여다보는 강박적인 습관까지 더해져 시야는 자꾸 좁아지고 아주 잡스러운 이미지들만 머릿속에 가득하다.
요즘의 나 자신이 드러내는 여러가지 행각들을 볼때, 어쩌면 누군가는 우울증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별로 그렇다는 생각은 안든다. 어떤 괴로운 일을 겪고 나서 그것에 대한 긍정적이지 못한 감정들이 올라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슬픔 내지는 절망 등등과 우울증이 구분되는 지점은 딱히 그러할 구체성있는 사건적 계기가 없는데도 발생한다는 것 아닐까? 물론 그 경과시간과 깊이에따라 당사자가 무기력증에서 헤어나올 수 없고 오랫동안 이겨낼 수 없다면 그때부터는 좀 또 다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바라보는 내 경우는, 휴, 나로서 제대로 존재할 수 없는 한 나절을 보내고 나서 슬퍼하고 괴로워 한다는 판단이다. 나도 더 말하고 싶은데, 나도 더 의견내고 싶은데, 나도 그거 아는 티내고 싶은데, 나도 리드하고 싶은데 등의 욕구들이 제대로 충족이 되지 않는 하루는 퍽 길다. 언어문제는 생각보다 정말 괴롭다. 이러고 나서 어깨까지 움츠러드는 긴장이 풀리고 혼자 머무르는 시간이 생기고 나면, 나는 아무것도 (건설적인)일을 하고 싶지 않아진다. 쉬고 싶고, 그냥 이 상황에 대해서 충분히 힘들다고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당연한 것 아니야? 나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고 나에게도. 두려움과 피로는 학습과 진전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견디기 쉽지 않지만.

한편으로 이럴 수록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느끼한 소리처럼 들릴 수 있는데, 정말 그렇다. 온갖 현란한 잡스러움을 떨쳐버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헤아리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격하는 것이다. 아주 적은 시간으로 해낼 수 있는 가장 건설적인 일. 그렇게 아프지 말자.

02 공공미술 기사읽기_데니스오펜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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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 내부'는 완공 이후 해운대해수욕장을 찾는 관광객들로부터 포토존으로서 오랫동안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작품 곳곳이 파손되고 녹이 스는데도 아무런 보수 작업 없이 방치됐다. 특히 2016년 10월에는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큰 타격을 입어 작품 곳곳이 손상되기까지 했다.

해운대구청 측은 지난달 작품을 철거하기로 최종적으로 결정하고도 부산 미술계와 작품 선정 작업에 참여한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에 철거 사실을 통보하지 않았다. 작품 '꽃의 내부'의 저작권을 가진 데니스 오펜하임의 유족 측에도 사실 통보는 없었다.

세계 설치미술 거장 유작 '고철'로 버린 해운대구청 (http://news20.busan.com/controller/newsController.jsp?newsId=2018011600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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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하는 작가 입장에서도 세심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관람객 혹은 관리유지 책임자들도 그렇다는 게 확인되는 "무지무지 무시무시(김 모 교수님 인용)"한 뉴스… 특히 공공 조형물의 본질적인 특성상, 화이트 큐브 내 미술작품과는 다르게, 관객과 책임자(이렇게 적고 싶지 않지만) 문화적 수준이 하나의 주체로서 모아져 드러난 느낌이다. 

01 공공미술 기사읽기 _ Xabier Vei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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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예술가이자 공항을 이용하는 한 사람으로서 아트공항에 바라는 점? 또는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 

예술가이자 한 개인으로서, 나는 많은 공항들이 슈퍼마켓이나 쇼핑몰과 비슷하게 변해가는 것이 안타깝다. 나에게 여행이라는 개념은 1960년대나 1970년대의 사람들이 생각했던 낭만, 호기심 또는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공존하는 것이며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는 매우 긍정적인 감정 같은 것이다. 시대가 변했고 수많은 공항들이 최신 소비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특별한 ‘발견’을 원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예술’이라는 아이덴티티는 인천공항을 가장 특별하고 독특하게 만들어주는 요소라고 생각한다.

Q 작품 제작 방식에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디지털 기술이 이 시대에 있기 때문이다. (Because it is there.) 현대미술가는 현대시대를 반영하는 예술가다. 그래서 그 시대에 있는 것, 그 시대를 반영하는 미디어를 사용한다. 때로 사람들은 아티스트를 과대평가하는데, 아티스트는, 동굴벽화를 그린 때부터 이집트 미술을 거쳐 오늘날까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에 있는 것을 사용할뿐이다. 미켈란젤로가 마블(대리석)을 쓴 것은 그 시대에 가장 쓰기 쉬운 소재가 마블이었기 때문이다. 60년대 미국의 팝아티스트들은 그 당시에 가장 흔했던 인쇄, 실크스크린 같은 것을 썼고, 그래서 그들의 작품을 강하게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나의 작품은 지금 이 시대, 디지털 시대와 관련이 있다. 내 작품이 지금은 디지털 시대, 컴퓨터, 소트프웨어와 같은 지금 시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10년 뒤에는 내가 지금 쓰는 미디어가 올드로 보일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그 때 가서는 올드라고 사람들이 좋아할 지도 모르겠다.


_자비에 베이앙 "이 모빌,인천공항 여객터미널 기준점 될 것", http://naver.me/xPCjBEU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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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 조형물 세우는 일, 혹은 그 일을 하고 있는 작가들을 솔직한 얘기로 다소 무시 아닌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어느새 나는 공공미술을 전공하는 학생이 되어있고 그들의 글이 다르게 읽히기 시작한다.
무시라기보다는 무지에 의거한 깔봄 같은 것이라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이유가 없는 건 아니고, 정체되어 있는 듯한 조형물의 (보통) 어마무시한 크기와 현란함 위로 또 어마무시한 의미를 씌우는 듯한 느낌이 싫었기 때문.

Xavier Veihan 웹사이트에서 포폴을 바로 다운받아볼 수 있다. 제법 감동적이다.
그것이 보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가닿느냐 이전에, 작가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고 그 생각들이 정직하되 단단한지가 우선은 갖춰질 요소이려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