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 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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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은 신앙인들에게 '우리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것'을 강력하게 권면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영적 예배'이기 때문이다(롬 12:1). 사도 바울의 이런 권면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깨닫게 해 준다.
 첫째, 하나님은 죽은 제사가 아닌 '산제사'를 받기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이다. 둘째, '산제사'란 곧 몸으로 드려지는 것, 즉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앞세우고 실현해 나가는 우리의 삶을 뜻한다는 것이다. 셋째,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 몸으로 드려지는 제사는 나만의 몸이 아닌 '우리의 몸'으로 함께 드려지는 삶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21세기에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는 어떤 삶을 의미하는가? 우리가 이런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지금이 어떤 시대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하며, 이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산제사'가 어떤 삶인지를 분명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몸으로 예배함'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구체적 실천을 뜻한다.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이 시대의 풍조는 자기 자신만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의 유익만을 앞세우며, 자기 과시와 이기적인 욕망을 충족을 위한 소비문화 속에 매몰된 삶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이 위기의 시대를 극복해야 한다.
 성경은 비록 우리가 일해서 얻은 결과물이라도, 그것을 소비할 권리가 우리에게만 있지 않음을 증거한다. 생산을 가능케 한 자원과 재능은 원칙적으로 하나님께서 제공하신 것이기 때문이다. 청지기로 부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청지기직에 대해 먼저 하나님께 결산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잊지 말자. 달란트 비유(눅19:11~27)가 증명하듯이, 모든 청지기는 자신이 일한 과정과 결과에 대해 평가받게 될 것이다. 청지기직을 충실히 수행한 자들에게는 더욱 큰 책임과 축복을 주님께서 부여하신다.
 종교개혁자 캘빈은 '선한 청지기는 오로지 '사랑의 법칙'에 의해 평가된다"고 주장했다. '사랑의 법칙'에 따르면 많은 생산 결과물을 맡은 청지기들, 즉 '가진 사람들'은 모든 하나님의 식구들의 생존과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을 도울 책임과 의무를 가진다는 것이다.
 또한 성경은 많은 성과물을 가진 사람들이 적게 갖고 있는 사람들을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레25장, 신24:14~15, 마25:31~46, 눅16:19~31, 19:8, 딤전6:17~18, 요일3:17~18).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령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땅안에 네 현제 중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지니라"(신15:11)
 가난한 자들로 상징되는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를 게을리하는 것은 궁극적인 소유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부정하는 행위임을 성경은 경고한다.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보다 물질을 중요시한다는 의미에서 물질주의를 우상숭배로 경계하고 있다(겔18:1~5, 눅6:24~25, 12:34, 16:13, 18:24~25, 딤전6:10).
 이렇듯 예수님은 우리에게 재물의 소유가 가지는 영적 위험을 깨우쳐 주시며, 가난한 자와의 풍성한 나눔을 일꺠워 주신다. 성경의 초대 교회와 캘빈의 제네바 교회, 한국의 초대 교회는 공동체적 삶의 강화를 통해 이런 성경의 경제 사상을 실제의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모진 노력을 다했던 교회들이었다.
 자신이 처한 상황 안에서 최선을 다해 신앙을 생활화하려 노력했던 이런 신앙선배들의 분투는 빈부격차의 심화가 중요한 사회문제로 대두하고 있는 요즘, 한국 교회와 신앙인들에게 '작은 자와 함께하는 삶'의 실천을 강력히 도전한다.


From magazine<Disciple> January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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