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15, 2015

더 김포로.

이른 아침 모르는 사람들이 신발장에 찾아와 '자 이제 신발 신겠습니다'라고 했다. 그것은 마치 장례식장에서 장의사들이 '자 이제 마지막으로 인사하세요'라고 하는 것과 매우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빠도 그렇다고 했다. 그들은 두터운 운동화를 신고서 우리집 마룻바닥을 밟고 들어왔다.


이사 전후로 엄마아빠는 엄청나게 다투었다. 예전에는 엄마얘기들을땐 엄마편 아빠얘기들으면 아빠편이 되곤 했는데 이제 두사람이 서로를 대할때 얼마나 안 매력적으로 변하는지 서로를 긁는 이유와 그 원인을 깨쳤다. 하지만 하나도 기쁘지는 않았다.


우리집은 17층이어서 하루 24만원짜리 사다리차를 빌려썼다. 새로 이사가는 곳은 21층으로 계속 꼭대기다. 이번에는 천장이 높은 그런 집. 하지만 넓은 창문 특성상 사다리차를 이용할 수 없어서 갈때는 엘레베이터만 이용해야한다고 했다. 도착해보니 새로 이사가는 아파트측에서 엘레베이터에 꼭맞는 회색 펠트 옷을 입혀놓았더라. 상처나지 말라고.


이삿짐 센터 사람들은 품위있어 보일 정도로 공손하고 젠틀하게 집 안의 물건들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오빠랑 나는 아침밥을 먹기 위해 아직 동네 상가가 한산한 시각에 김밥천국을 갔다. 사실 그건 나에게는 핑계였다. 집이 비워지는 것을 보고 싶지가 않았다. 계속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사다리차는 수직으로 다리를 들어올려서 천천히 천천히 천천히 17층 내방 창문 위치로 뻗어나갔다. 고등학생인 내가 창밖으로 머리를 디밀고 열심히 감성셀카를 찍던 곳. 열렬히 사랑하던 남자애한테 종이비행기로 접은 편지를 던지던 곳. 저녁때 처량한 붉은 노을이 들어오던 곳.
올라가보니 창문은 모두 뽑히고 없었다.


이삿날 직전까지 모든 종류의 짐을 줄이느라 깨나 애를 먹었다. 워낙에 짐이 많은 집이라 이만큼 줄였는데도 다른집들보단 여전히 많은 편이리라. 내 방을 메우고 있는 온갖 소지품 70프로는 온전히 과거의 기록이라 말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추억거리 기능만 하는 것 또한 게중에 50프로는 넘는 것 같았다. 편지. 사진. 스크랩. 말린 꽃. 그와 함께 하면서 남긴-버리지 못한 자잘한 것들. 사실 너무 많다. 지독히 과거 지향적인 방. 추억을 집아먹고 뚱뚱해진 방. 바쁘게 살고 뒤돌아보기를 싫어하면서 내방만 비대해졌다.


침대 머리맡 위 작은 해먹에 담겨있던 육십여가지 동물인형들은 이제 어느 누구도 가지고 놀지 않는다. 동시에 어느 누구도 버리자고 말하지 못한다. 나도 오빠도 엄마도 아빠도.


사다리차 끝을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는데 아파트 건물 옆 분리수거장에 삐죽이 나있는 나무 끝에도 까치가 커다랗게 집을 짓고 있는게 보였다. 새집치고 커다란 집이었어도 이파리 하나없는 나뭇가지 끝자락에 걸린 나뭇가지들 뭉치는 사다리차까지 딸린 육중한 아파트 옆에서 한없이 가녀려보였다.


나는 이제 이 집으로 다시 귀가하지 않을것이다.


전 주에 손바닥이 발갛게 부을만큼 걸레로 닦아댔던 새집에 허무하게 사람들은 또 신발을 신고 들어갔다. 허둥지둥 물건을 집어넣고 보이는 바닥은 다시 쓸고 닦고 스팀청소기를 밀었다. (어느 순간 자 이제 신발을 벗으세요 라고 했다) 하지만 침대에 어제 입던 잠옷을 입고 누운 지금 가구들의 발들이 얼마나 가려울까 생각하며 같이 찝찝해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불보를 뒤집어서 깔았다. 베개만 새것을 가져다 놓았다. 어제까지 먼지털며 더러운 물건을 침대위로 가져다두고 했더니 그런가 베개때문에 자꾸 얼굴에 여드름이 나는것 같았다.


천장이 높은 이 집에 들어온 것들은 다 작어보인다. 창문도 넓고 커서 하늘을 방안으로 데려와준다. 동네주변은 아직 개발이 덜 되어서 밤에는 새까맣다. 가로등 주변만 동그랗게 밝혀진 모습이 마음에 든다. 하루종일 초록색 플라스틱 박스들 사이에서 미슥거리는 속을 붙잡고 어설프게 서있다가 창밖을 보고 감격했다.


다마른 빨래가 개켜져 쌓이던 식탁은 이제 제대로 식탁으로서 부엌 복판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는 같이 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려고 노력을 해볼 마음을 가질 것이다.


갑자기 방밖으로 나온 엄마가 온가족이 함께 감사기도했으면 좋겠다고했다. 너무 오랜만에 식탁에 마주 앉았다. 아빠는 싫다고 소파앞에 누웠다. 오빠가 내 갈비뼈를 찔러서 내가 첫타자로 엉성하게 기도했다. 오빠는 기도할때도 문장구조가 퍽 논리적이다.


모두가 새 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이 시각 아빠는 새집에서 자는 첫날밤에도 거실에서 개들과 잠을 잔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