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 21, 2014

조금 떨어져 있는 몇가지의 점과 거기로의 점선들

 땀이 조륵 흐르는 뒷목을 손목으로 닦아 올리며 잠 못이루는 무더위 새벽에
문득 한겨울의 내 모습을 상상한다.


 졸업반인 덕분에 커다란 결정들을 준비하고 해내야할 시기인데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너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너와 이 한국 땅 밖에서 처음으로 함께 보낼지도 모를 12월이다.  이런 내 상태가 어쩌면 조금 부끄럽거나 위험한 것같다고도 생각한다.
 두번째는 졸업 심사 내지는 졸업 전시회에 서 있는 내 모습이다. 좌우에 나는 무엇을 설치했을까. 혹여 영상이 있다면 내가 너무 많이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입체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니 두툼한 코트를 벌써부터 장만하고 싶다. 그 아래로 까만 스타킹에 앵클부츠도 신고싶다 고 생각이 미쳤는데 도저히 이대로는 먹고 마시고 빈둥대선 안되겠다 싶다. 늘 심플하고 베이직한 옷들을 좋아한다. (왜 인지 모르게 '여성스럽게' 옷을 차려입는 날이면 사실 전혀 그런게 아닌데, 남자들의 시선을 의식해 나 자신을 억지스럽게 꾸민 듯한 기분에 굴욕적인 마음까지 든다.) 어쨌든 여기서 문제는 그런 차림새를 '좋은 느낌'으로 소화하려면 늘 그렇듯이 둥글기 보다는 직선적인 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알 박힌 종아리로부터 발목까지의 율동적인 곡선 다음 툭 발꿈치 바깥으로 다시 튀어나오는 부츠의 실루엣은 영 좋은 조합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릎의 또렷한 모양과 느슨한 소매 밖으로 나온 검소하게 생긴 손들을 사랑한다. 팔목부터 팔꿈치까지의 곧은 선도.
 체중이 매우 천천히 느는 한편 다시 그것을 줄이기는 더더더 힘든 몸을 가지고 있다. 평생동안 체중은 나이와 비례하는 그래프를 그려왔는데, 가시적인 차이를 느낄만큼 감량했던 적은 2013년 1월이었다. 집에 처박혀 공부를 하느라고 밖에 거의 나가지를 않았는데, 무슨 생각이었던지 매일 두부와 김, 생야채 위주로 끼니를 떼웠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나도 살 뺄거야"라고는 매일 입에 붙이고 다녔지만 죽기살기로 식단관리에 몰입해본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몸의 신진대사를 걱정하며 지금은 먹어줘야할 타이밍이지, 안그럼 먹는 족족 지방으로 전환될거야, 내지는 그냥 순수한 작업 스트레스를 먹는것으로 위로하자 하곤 했다. 먹으러 이동하는 시간 음식을 하는 시간 음식을 입에 넣고 씹는 시간. 시간은 시간대로 흐른다. 내가 원하는 모양의 몸은 점차 더 멀어져간다.

 내 머릿속에서 패션은 곧바로 몸의 모양에 직결된 문제이고 몸은 먹는 섭취량과, 그리고 음식은 다시 돈과 연결된다. 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적게나마 일정 수입이 발생하는 가운데 먹을 것을 줄이고-지출을 줄이고- 먹을 시간을 다른 일에 투자하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돈은 다시 12월의 너와의 시간으로, 혹은 맘에 드는 스타일의 옷으로 바뀔 것이다. 투자한 시간은 작업이 되어 나올 것이다.아마. 현재로서는 마법같은 일들이다. 

 최근의 작업에서도 몸은 계속 출현한다. 재료가 되었다. 그래서 한번 더 내가 가지고 싶은 모양새의 몸이 영상에 노출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체중감량에 대한 이유를 더한다.
 보다 예민한 인상을 줄 수 있는 몸이 필요하다. 이것은 기존의 누군가의 스타일을 따라한다기보다는 내가 가진 눈코입 머리카락 팔 다리 몸통 가슴 손가락 발가락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다. 나를 가꾸는 일에 그동안 참 무심해왔다. 하지만 내가 사람들을 보고있듯이 사람들도 나를 본다는 걸 잊으면 안되겠다 싶다.

  무겁지 않게 군더더기 없이 살고 싶다. 괜한 것들을 섭취하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
음식뿐 아니라 관계도 물건도 기회도 자리도 모두. 가지런한 몇가지에만 집중하고 싶다.

요즘 좋아하는 영어 단어는 essential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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