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7, 2018

미안


답답함에 흘러나오는 짙은 한숨
얼굴을 부비듯 구기는
두려움을 부르는 지친 표정들
소환된 두려움은 결국 너를 찌른다.

나는 아무 일도 없는데
상대방이 내가 완벽히 모르는 다른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을까봐 불안해 하는 것일까?
순수한 두려움이다. 진심이다. 믿어달라. 어처구니 없겠지만 나는 그게 곧이라도 진짜가 되어서 현실로 펼쳐질까봐 금새 눈물이 고인다. 두려움은 바로 완벽한 평범함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아무일 없는 , 또는 그런 같아 보임에서 말이다.

오래 함께 할 거라 약속하던 손가락이 기어이 부러지던 .
이별을 통보받을 기대어 있던 딱딱한 방 벽. 기묘한 타이밍에 대해 알게 된 밥상머리.
충분한 시간이 지났고 이제는 도저히 되새길 추억조차 밋밋한 과거로 꺼진 줄 알았는데.
나를 괴롭히는 마지막 가시들이 남아있었다. 오늘의 너와의 관계에서는 이별장면을 겹쳐 일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전화기 너머로 / 듣게 되는 / 다른 이성.
어쩌면 내게 너무도 익숙한 구조여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목소리는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의구심이 만들어내는 나쁜 그림에 아무리 떨어본들, 현실이 무서우리라고는 정말로 펼쳐질때까지 알지 못했다.

물론 두려움은 이십대 초중반에 있었던 연애가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전화를 붙잡고 혼자 안방에 쓰러진 엉엉 울던 엄마. 밀레니엄의 새시대가 열리던 시절 전후부터 그는 (당시 열살이었다) 나에게 남자와 밤을 조심하라고 그렇게 일렀다. 이쯤오니 욕을 하고 싶은데 그렇다고 문제를 모두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래. 그래서. 나는 어떡하면 좋지. 정말로 아무일 없어서 평범하게 지내고 있는 너로선 너무도 억울할 거야. 서운할 거야. 상처를 쏟아내는 게 창피하고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 답답하고 지친 표정과 목소리가 나에겐 너무도 익숙하다. 그래서 그게 너무 무섭다. 경직된다.  친숙한 모습 앞에 나는 외로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렇게 악순환이다

물론 네가 해결하거나 도와줄 일이 아닌 것은 알고 있다. 아무일 없을거야 믿으면 될까? 너를 믿고 사람도 믿으면 되는 걸까? 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믿을 줄은 알았지만, 없다고 믿는 법은 모르고 살았나보다. 아니면 아예 거꾸로, 인생사 무슨일이든 얼마든지 일어날 있는 것이라며 차라리 느슨해지면 될까. 지나간 시절이 이렇게나 깊은 상처로 남아있을 몰랐다. 어쨌든 나는 이걸 해결해야한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으니.